1분기 자금시장 다양한 악재들 겹쳐
증권·저축은행·캐피탈 유동성 부담↑
증시 비중은 적어 주가 영향 제한적
AI 혁신 수혜 IT·바이오 주식 긍정적
“내년 증시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미·중간 대치는 날로 첨예해지고 있고, 패권을 잃은 러시아의 울분도 날로 커지는 모습이다. 고조된 갈등이 평화적으로 해소된 사례는 역사적으로 드물다. 내년 투자 전략에서 전쟁의 변수도 꼭 고려해야 할 이유다. 예상되는 파장 등을 사전에 고려해 만에 하나 충돌사태가 발발 했을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2021년 12월 23일)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증시가 2년 연속 하락한 적은 없다. 회복 정도는 다르지만 하락한 다음 해에는 반등이 이뤄졌다. 실제 코스피는 2000년 이후 두 자릿수 하락율을 보인 다음 해에는 어김없이 낙폭을 상당 부분 회복했다” (2022년 12월30일)
2021년 말과 2022년 말 제시했던 2022년과 2023년 증시 전망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고, 2023년 코스피는 20% 가까이 올랐다. 크게 틀린 것은 아닌 듯해 다행이다. 하지만 경제 전망은 적중 여부보다 전망 과정에서 경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데 더 큰 의미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2024년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될 지 전망해봤다.
태영건설이 채권단에 기업개선작업(workout)을 신청하면서 새해 경제 전망의 최대 변수 가운데 하나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결국 자터지게 됐다. 언젠가는 터질 문제였지만 시기가 중요했다. 가급적 다른 위험 요인들과 얽히지 않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어서다. 불행히도 지금은 그리 좋은 때는 아닌듯하다. 새해 상반기에 예고된 여러 악재들과 겹치기 때문이다.
새해 경제는 어렵겠지만 주식시장 전망은 그리 어둡지 않다. 미국의 긴축 종료로 자산가격을 짓눌렀던 금리의 무게가 줄었다. 새로운 수요에 대한 기대와 올해 부진했던 간판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되면서 나타날 기저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AI) 등 기술 혁신이 가져올 자극도 긍정적이다. 다만 국내 보다 글로벌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미국 주식의 매력이 훨씬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금시장 악재 수두룩
부동산PF 자산유동화어음(ABCP) 만기는 연간 전체(20.3조)의 82%인 16.7조원이 1분기에 집중돼 있다. 1분기에 옥석가리기가 진행된다는 뜻이다. 금융투자협회가 집계한 내년 회사채 만기도래물량은 81조2309억원이다. 올해보다 16%나 많은 역대 최대다. 코로나19 때 낮은 금리를 활용해 기업들이 현금을 비축하면서 회사채 발행이 급증한 결과다. 분기별로는 1분기에 37.7% 늘어 증가 폭이 가장 크다.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도 변수다. ELS는 보통 채권을 사서 그 이자로 옵션에 투자한다. 신용도는 양호하지만 수익률(yield)이 높은 여전사(카드/캐피탈사) 회사채가 인기가 높았다. ELS가 원활히 상환되면 새로운 상품이 설정되면서 회사채 차환 물량을 받아줄 수 있다. 그런데 ELS에서 대규모로 손실이 나면 차환 물량을 받아낼 여력이 줄어든다.
캐피탈사는 부동산PF 대출 규모(2023년 9월말 24조원)도 상당하다. 1분기 캐피탈 발(發) 시장불안이 현실화될 확률이 높아 보인다.
해외부동산펀드의 대규모 손실도 자금시장에는 악재다. 자금시장에서는 연기금, 보험, 증권 등 기관들이 주요한 공급자인데 대규모 손실이 2023년 장부에 인식되면 새해에는 자금 집행에 있어 위험 선호를 낮출 수 있다. 세수 부족으로 지방교부금 수입이 줄어든 지방정부와 지방공기업이 채권을 발행해 부족한 자금을 조달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모두 자금시장의 부담을 높이는 요인들이다.
▶주택시장 단기 회복 어려워…금융회사 유동성위기 가능성
금리가 하락하고 주택공급이 부족해지면 부동산 시장은 되살아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새해에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리와 물가가 함께 급등하면서 집 짓는 비용이 코로나19 이전 보다 크게 늘었다. 공급가격이 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높아진 가격을 받아내려면 가계가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로 소득이 크게 늘지 않으면 더 많은 돈을 빌리기 어렵게 됐다. 심지어 정부는 내년부터 사실상 차입 한도를 더 낮추는 스트레스 DSR 제도까지 도입하기로 했다. 가계가 높아진 집값을 감당할 정도의 자금을 마련할 수 있으려면 꽤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새해에 부동산 시장이 되살아나기 어렵다면 부실PF 사업장의 정상화도 쉽지 않다. 시행사나 건설사들이 빚을 못 갚으면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선 금융회사들이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현재로만 보면 국내 금융회사들의 자본건전성은 나쁘지 않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이나 금융당국의 관리기준을 모두 웃돌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PF 관련 자산이 많은 저축은행, 증권사, 캐피탈사는 부실여신이 빠르게 늘면서 대손충당금 부담이 높아지고 있다. 1분기 자금시장에서 부동산PF 부실이 계속 확인된다면 2금융권 회사들에 대한 건전성 우려가 높아져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자기자본비율이 정부의 규제수준에까지 근접한 저축은행 등 비은행예금회사에서 대규모 예금인출사태(bank-run)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서둘러 유동성 대책을 발표하고, 유사시 한국은행까지 나설 가능성을 시사한 이유다.
▶주식시장은 제조업 중심…AI 혁신이 수요회복 자극
부동산 PF 사태가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인 것은 분명하지만 주식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증시에서 부동산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아서다. 시가총액 1800조원이 넘는 코스피200인데 건설업은 44조원에 불과하다. 금융업(168조원)을 합해도 200조원을 조금 넘는 정도다. 그나마 금융업종 대부분을 차지하는 은행주는 부동산PF 부실에 대한 방어력이 아주 높은 편이다. 태영건설 사태에도 코스피가 하락하지 않는 이유다.
우리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동력은 정보기술(672조원), 산업재(219조원) 등 제조업이다. 다행이 시가총액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간판 제조기업들의 새해 전망이 어둡지 않다. AI의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오랜 침체를 겪었던 메모리 반도체와 스마트폰 수요에 강력한 자극이 될 전망이다. 카메라 성능 개선에 그쳤던 스마트폰 변화가 ‘AI 기능 탑재’라는 혁신을 만나게 된다. 시총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크게 오른다면 코스피 상단이 3000선에 근접할 확률도 높아진다. AI를 활용한 바이오산업 혁신 기대도 크다. 시총 4위 삼성바이오로직스에 호재다. 전기차 성장 정체에도 현대차 등 자동차 업종의 실적은 견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망이 어둡지는 않지만 눈 높이를 너무 높이기는 어렵다. 수요가 살아난다고 해도 미-중 갈등과 각국 무역장벽 강화로 우리 제품들이 예전 같은 폭발적 성장세를 다시 누리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다. 미국 경제는 뜨겁지만 유럽과 중국은 경기 상황이 좋지 않다. 증권사들의 코스피 상단 전망치가 3000을 하회하는 이유다. 코스피가 3000까지 간다고 현재 대비 수익률은 14%다. 올해 상승률 17% 보다도 낮다. 이와 비교해 미국 증시는 새해 사상 최고치를 넘어 새로운 기록을 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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