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F)·투자(I)·재시동(R)·관리(M) ‘주목’
단단·견고한(FIRM) 기업으로 체질 개선 돌입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열린 '디렉터스 서밋'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SK 제공] |
[헤럴드경제=정윤희·한영대 기자] SK그룹 재도약 발판 마련에 중요 이정표가 될 경영전략회의(옛 확대경영회의)의 막이 올랐다. 대대적인 사업구조 재조정(리밸런싱)을 진행 중인 SK그룹은 이번 회의를 계기로 본격적인 ‘새 판’ 짜기에 나선다. 특히, 반도체·인공지능(AI) 등 미래 먹거리 분야의 ‘역대급 투자’를 예고한 만큼 ‘위기를 기회로’ 만들 묘수가 나올지 관심이 쏠린다.
SK그룹 최고경영진들은 이날 오전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서 경영전략회의에 돌입했다. 오는 29일까지 이틀간 진행되는 이번 회의는 1년에 3번 열리는 SK그룹 주요 회의(경영전략회의·이천포럼·CEO세미나) 중 첫 번째로 열린다. 첫 순서인 만큼 통상적으로 향후 SK그룹이 실행해야 할 경영전략의 밑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한다.
회의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SK이노베이션 수석부회장,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비롯해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 30여명이 참석해 머리를 맞댄다. 미국 출장 중인 최태원 회장은 화상으로 회의에 참여한다.
재계에서는 최근 다양한 대내외적 변수가 SK그룹을 흔들고 있는 만큼 이번 회의 결과에 따라 향후 SK그룹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번 회의가 이례적으로 ‘1박2일 끝장토론’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도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최고경영진들 사이의 위기감과 공감대가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번 회의의 주요 관전 포인트로는 ‘F·I·R·M’이 꼽힌다. 세부적으로는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한 자금조달(Financing) ▷미래사업 투자(Investment) 규모 ▷반등을 위한 재시동(Reboot) 방안 ▷효율적 관리(Management)다. SK그룹이 한층 더 단단하고 견고한(FIRM)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핵심 요소들이기도 하다.
미국 출장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등 미국 빅테크 CEO들과 잇따라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최 회장은 2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들 CEO와 함께 촬영한 사진을 올렸다. [최태원 회장 SNS] |
최우선 과제는 단연 자금조달(Financing) 방안이다. 반도체·AI·전기차 배터리 등 전방위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는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SK그룹은 이미 반도체·AI를 중심으로 한 ‘역대 최대 규모 투자’를 천명한 상태다.
다만,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정체) 여파로 SK온에서 비롯된 재무 부담이 커지고 있는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모색이 최우선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단 분석이다. SK온은 올해만 7조원이 넘는 투자금이 필요하지만 10개 분기 연속 적자에 시달리는 상태다. 최근 SK그룹 안팎서 거론되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지분 매각 등도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한 자금 조달 방안 중 하나다.
그래도 지난해까지 부진했던 캐시카우(수익창출원) 사업들이 최근 상승세를 타는 것은 긍정적이다. 정유사업을 하는 SK이노베이션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6247억원)이 전년 동기 대비 66.6% 늘었다. 지난해까지 적자에 시달렸던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 2조8800억원을 달성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경영전략회의는 그동안 SK 경영의 큰 틀을 짜는 역할을 했던 만큼, 세부적인 자금 조달 방안은 추후에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구체적인 미래사업 투자(Investment) 규모에도 관심이 쏠린다. SK그룹은 “성큼 다가온 AI 시대를 맞아 AI 생태계와 관련된 그룹 보유 사업에만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전날 SK바이오사이언스가 3400억원을 투자해 독일 바이오 기업인 IDT 바이오로지카를 인수한다고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례도 있다. 경영전략회의가 사상 처음으로 진행됐던 2015년 당시 최태원 회장은 “어려울 때 기업이 앞장서서 투자를 조기에 집행하고 계획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의 이후 SK하이닉스는 향후 10년간 46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미래비전)을 발표했다.
미국 출장 중인 최 회장이 샘 올트먼 오픈AI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와 연쇄 쇠동하면서 대규모 투자 시기가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AI 생태계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발 빠른 투자 결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최태원(오른쪽) SK그룹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태원 회장 SNS] |
이번 회의를 기점으로 그룹을 반등 궤도에 올릴 재시동(Reboot) 방안도 포인트다. SK그룹은 최근 3~4년간 투자를 통한 외연 확장에 전념, 우리나라 대기업 중 가장 많은 219개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기업 규모가 급격하게 커지면서 계열사 간 중복 투자·사업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
SK그룹이 이번 회의의 주요 논의 안건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리밸런싱)과 ‘질적 성장’을 꺼내든 이유다. 회의 이후 사업 재편에 대한 방향성이 제시된다면 SK그룹의 투자 효율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운영 개선(OI, Operation Improvement) 강화로 대표되는 관리(Management) 역시 주목할 요소다. 운영 개선은 기존 사업 효율을 높이고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경영 전략이다. 미래사업 투자와 사업 재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이는 그룹 체질개선을 주도하고 있는 최창원 수펙스 의장이 강조해온 ‘내실 경영’과도 연계된다.
OI 추진을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수다. 때문에 SK그룹은 강한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OI 강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SK 최고경영진들은 이번 회의에서 SK 고유의 경영체계인 SKMS(SK Management System) 실천·강화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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