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나라 일본 식문화 감칠맛나게 버무려
지역 대표음식에 담긴 사회·역사도 재미
사카나와 일본/서영찬 지음/동아시아 |
새하얀 접시와 옥돌 위에 얌전하게 올려진 네 점의 오도로(참다랑어의 대뱃살)를 보며 침을 꼴깍 삼키는 사이, 빨간 빛깔의 병어조림이 인고의 시간을 같이 한 무 한 토막과 함께 그 옆에서 젓가락을 유혹한다. 겉면을 노릇하게 구어 낸 갈치와 고등어는 게장보다 먼저 나쁜 짓을 시작한 ‘밥도둑’이었다.
이처럼 맛깔나는 생선요리들이 밥상 위에서 사라지고 있다. 비린내가 나고, 가시도 많은 식재료 특성 때문에 특히 젊은 세대의 경우 생선을 기피하는 사례가 많다. 생선은 노인만 즐기는 음식이 됐다는 자조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생선마다 가지고 있는 유구한 역사를 따라가며 그 맛과 요리법을 머리 속에 그리다보면 내일 점심은 꽁치구이로 할까, 아니면 스시 한판 먹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부산이 고향인 일본어·영어번역가 서영찬은 신간 ‘사카나(생선)와 일본’을 통해 생선요리를 주로 먹는 일본의 어식문화 이야기를 감칠맛 나게 풀어놓았다.
저자에 따르면 ‘자기 규정화’를 좋아하는 일본인은 스스로를 가리켜 ‘어식(魚食) 민족’이라 칭한다. 일본이 섬나라인 데다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을 금지했던 탓에 생선을 즐겨 먹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문화적 이유가 있어서다. 덕분에 일본에는 다른 국가에 비해 다양한 해산물 조리법이 발달했다.
하지만 그런 일본에서조차 이제 어식은 점점 노인만 향유하는 식습관이 돼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어식 문화가 ‘골탕(骨湯)’이다. 구운 생선을 다 먹고 난 뒤 남은 뼈·꼬리·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은 뒤 간장을 살짝 뿌리고 젓가락으로 뼈에 붙은 살점을 남김없이 먹는 일이다. 국물 한 방울도 안 남기고 그릇을 비워내면 그릇에는 오로지 생선 뼈만 남게 된다.
이 같은 ‘골탕 의식’은 먹을 것이 모자라 하는 것이 아니라 생선이라는 식재료를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는 일본인 특유의 은근한 자긍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생선을 먹는 보편적인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골탕을 강요했다가는 싸움이 날 수도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일본에서 생선 소비가 급감한 것은 밥을 주식으로, 어패류를 반찬으로 먹던 일본의 식생활이 점차 빵·면·패스트푸드를 주식으로 하는 생활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결정타를 맞았다. 생선은 요리하기도 번거롭고 먹고 난 후 음식물쓰레기 처리도 고역이다 보니 굳이 혼자 밥을 먹으면서 생선요리를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집안 곳곳에 밴 비린내 제거는 덤이다.
책의 구성은 오마카세(주방장 특선)처럼 차려졌다. 굳이 첫 장부터 들쳐 볼 필요 없이 좋아하는 생선이 나오는 장을 펼쳐서 그것부터 맛보면 된다. 정어리(이와시), 꽁치, 가다랑어, 날치, 오징어, 붕어, 청어, 참치 등 수십 가지의 물고기가 책 속에 자리했다.
저자는 특히 멍게에 대해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직격탄을 맞은 도호쿠 지방(아오모리·이와테·아키타·미야기·야마가타·후쿠시마현)의 맛이라고 표현한다. 씁쓰레한 멍게의 맛이 오랜 기간 차별받은 도호쿠 사람의 쓴 삶을 닮았다고 봤다.
도호쿠는 각종 자연재해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일본 역사에서도 교토·오사카·도쿄가 깔보는 만년 변방이었다. 특히 1963년 도호쿠를 관통하는 새 국도를 ‘49호’라고 명명하자, 주민들의 원통함이 폭발했다. 일본에서 ‘49’라는 숫자는 사고, 49재 등 죽음을 뜻하는 경우가 많은데 도로에 굳이 불길한 숫자를 붙인다며 도쿄의 높은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이 들끓었다. 이 지역 특산물인 멍게는 일본 내수보다 이웃 한국에 더 많이 수출됐다. 역사적으로 쌓인 앙금 때문인지 다른 일본 지역과 나누지 않아 일본에선 멍게가 되레 생소한 식재료라는 것이다. 저자는 도호쿠의 눈물맛과 쓰라린 맛이 응축된 멍게를 도쿄의 고관대작이 먹어봐야 한다고 권한다.
반면 ‘슈퍼스타’ 도미는 온갖 길하고 상스럽지 않은 표상이 덧칠해져 있다. 붉은 살을 가진 도미는 일본 지배계급이 입던 붉은색 의복과 이미지가 겹치면서 천황과 쇼군에게 올리는 고급 진상품 지위를 꿰찼다. 실제로 1711년 조선통신사를 접대하기 위해 각 번(藩)에서 경쟁적으로 도미를 공수하느라 진땀을 뺏다는 사료도 남아 있다. ‘다이노다이’는 심지어 수집품으로 각광받는다. 다이노다이는 도미의 머리와 아가미 사이에 있는, 가슴지느러미를 움직이는 기관이다. 이 뼈의 형상이 흡사 도미의 축소판처럼 생겨 마치 네잎클로버처럼 행운의 뼈로서 고이 장식장에 모셔두는 이가 많다. 심지어 태어난 지 100일 여가 지난 아기에게 처음으로 먹이는 생선도 도미다.
이 외에도 왜 꽁치는 메구로(도쿄의 한 지명)의 꽁치가 제일인지, 백합조갯국은 왜 어부의 소울푸드인지 등 어식 문화에 얽힌 일본의 과거, 현재, 계급, 신앙 등 다채로운 ‘지식 쇼’가 펼쳐진다.
이민경 기자
think@heraldcorp.com